책에 관한 짧은 메모-⑪

2009년 7월 - 9월 두달동안 읽은 책들에 관한 짧은 기억.
역시 책은 많이, 가리지 않고 읽어야 자기 취향의 작가를 찾아낼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더랍니다.
김이환 소설가와 필립 베송처럼 너무나 취향인 작가들을 알게 되어 행복했더랍니다.
(고백하자면 둘 다 소설 제목이 마음에 안들어서 안읽고 있었더랍니다.
심지어 10월의 아이는 꽤 이슈가 되었던 작품인데도.)

모리
이세벽 지음 / 굿북(GoodBook)
★ 죽음을 몸에 두르고 태어난 소년이 있다면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현대판 우화소설. 죽음을 보고 공포를 느끼는 이가 있다면, 죽음을 친밀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 매스컴에 휘둘려 스타가 탄생되기도 하지만 때로 그 매스컴은 무엇이 진실인지를 덮어버리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모리가 두르고 있는 죽음이,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살아가고 싶어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 그것은 죽음을 바깥이 아닌 안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모리가 친구들을 모두 잃고나서야 사람의 눈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역시, 자신의 몸을 두르고 있던 죽음을 안으로 삼키는 법을 터특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김이환 지음 / 로크미디어
★ 한없이 경쾌하고 긍정적인 소설이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유쾌했고, 다 읽고 난 후에도 유쾌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틀리지 않은 상상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당연히 무언가의 비유일 거라고 생각했던 북금곰이 정말로 곰이었다던가 하는 세세한 요소들이 웃음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소설 후반부에 모든 것이 너무나 주인공에게 완벽하게 돌아가는 상황이 그 웃음을 반감시켰다. 모든 것이 잘 풀리지 않았어도, 이미 주인공이 있을 곳은 생겼으니 그걸로 괜찮았을 텐데.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테리 트루먼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안락사라는 민감한 문제를 다룬 책. 그래서 처음에 보기에 굉장히 꺼려지기도 했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주장이 적힌 책은 아닐까 해서.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물론 이 책은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지적장애인 아동의 입장을 대변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자신의 아이를 죽일 생각을 하게 된 아빠의 입장 역시 눈물날 정도로 와닿는다.
결국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아이는 나를 죽이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아빠 역시 외치고 있다.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다고.

만사 오케이
다이라 아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북폴리오
★ 어느날 엄마가 가출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딸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쁜 남자에게 이용만 당한다. 작은딸은 그런 엄마와 언니가 질색이라, 성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결혼을 선택한다.
가출한 엄마는 전국을 떠도는 유랑단의 멤버가 되고, 작은딸은 이혼당하며 아빠는 정년퇴직당한다. 이렇게만 적고 보면 참으로 불행하기 그지없는 가족 이야기가 틀림없다. 하지만 소설 속 식구들은 모두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긍정하고 있다. 태풍으로 집이 날아갔어도 오케이. 이 가족들이, 참 부러워졌다.

아빠의 여름방학
사카키 쓰카사 지음, 인단비 옮김 / 노블마인
★ 사카기 쓰카사의 소설다운 소설이라고 하면 어폐가 있는 말일까.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따뜻하고, 인간을 긍정하고, 조금은 만화같고, 캐릭터들이 분명해 결국 누군가를 응원하게 되는 이야기. 사카기 쓰카사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왠지 소설이란 말보다 정말로 이야기란 말이 어울리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사람은 아직 괜찮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미미여사의 소설처럼, 사카키 쓰카사의 소설도 꼭 챙겨읽게 되는것인지도 모르겠다.


10월의 아이
필립 베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아이가 살해당했다. 강에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다. 과연, 정말로 범인은 누구였던 걸까.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이야기. 아이의 이름도, 일부 등장인물의 이름도 실명을 사용해 프랑스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소설이라고 한다.(아이의 부모가 아직 살아있기에 더욱 더.)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의 도덕성을 탓할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내가 저 사건을 직접 접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작가가 소설 속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진짜 메시지에 공감했기 때문일까.

이런 사랑
필립 베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세 명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라고 하면 뻔해 보이는, 하지만 뻔하지 않은 소설. 이 책을 읽기 전에, 프랑스 영화는 앞과 뒤를 마음대로 상상할 줄 알아야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는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었을 때 정말로 그 말이 와 닿았다. 영화 뿐만이 아니라 문학도, 앞뒤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진짜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생각을 풍요롭게 해 주는지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은 필립 베송의 덤덤하지만 세밀한 필체 때문일지도.

금단의 팬더
타쿠미 츠카사 지음, 신유희 옮김 / 끌림
★ 사람은 욕망을 위해 어떤 일까지 저지를 수 있을까. 금단의 팬더에서는 그 욕망을 미식으로 나타내고 있지만, 다른 원초적인 욕망들 역시 잔혹함을 동반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다. 그중에서도 미식, 즉 음식에 대한 열망이 특별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그것이 다른 원초적인 욕망들에 비해 너무나 복합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먹는다는 행위와 미식이라는 행위는 같으면서도 결국 다른 것이니깐. 섹스와 잠에 대한 욕망과는 다른 사회적인 부분도 그 안에 포함되기 때문에 미식은 더 절제되거나, 혹은 잔혹해 질 수 있는 것이다.

다이어트의 여왕
백영옥 지음 / 문학동네
★ 다이어트라는 소재는 식상하다. 소설 속 등장하는 쇼도 식상하다.(흡사 미국의 펫 제로를 보는 듯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 소설이 재미있었던 건, 그 식상함이 실제로 현실과 너무 가깝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거식증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세상. 다이어트를 신경쓰지 않으면 오히려 정신병자 취급을 받게 되어버린 사회. 그 이유는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실상 그것은 실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뚱뚱해지는 이유도, 점점 말라가는 이유도 모두 쇼의 참가자들처럼 극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그들이 배고파하고 괄시받았던 모습만은 진짜일수 있다는 걸, 슬프게도 나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알고 있다.

엘 카미노 별들의 들판까지 오늘도 걷는다
신재원 지음 / 지성사
★ 엘 카미노가 대체 어딘지 궁금해서 집어들게 되었던 여행기. 뜻하지 않게 읽게 된 기독교 성지 순례 코스였다. 하지만 종교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한없이 펼쳐진 길과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싶으면 추천. 하지만 개인적으로 끌리는 필력을 지니신 분은 아니었다. 그러고보면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 하나. 그 하나하나 다른 스탬프 디자인에 숨겨진 이야기나 의미는 없었을까.
(아직까지 여행서는 걷기 열풍인듯. 여행서가 많이 나오는 건 참 좋은데 좀 더 내실있게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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