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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그 맛스러운 섬에 가다 - ③시간이 멈추는 숲

 

때때로 곧게 위로 뻗은 나무를 보면 나도 모르게 그 나무의 끝을 보려 있는 힘껏 고개를 젖힐 때가 있다.
도심에서 그 정도로 높게 뻗은 나무를 보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가끔씩 그렇게 위를 올려다 볼 때마다 공허하게 비어있는 텅 빈 하늘과 눈이 마주쳐 머쓱해 졌다.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방해물처럼 느껴져 얼른 가던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뭐 볼게 있다고 자꾸 위를 쳐다보냐. 바보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도 큰 나무를 보면 저절로 고개가 위를 향했다.

아무리 봐도 저기가 너무 비어 있어. 재 혼자 하늘을 받치고 있는 것 같아서 불쌍하다고!
고기국수로 한껏 부른 배를 슬슬 쓰다듬으며 삼대회관 앞 도로를 건너 삼성혈로 향했다.
입장료를 내고 문을 넘어서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빽빽하게 들어선 숲이 펼쳐졌다.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한적한, 그래서 더욱 더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왈칵 치솟았다.
사실 삼성혈에 들리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관광 지도를 얻기 위해서였다. 제주도로 내려오기 전 정말 열심히 음식 정보만 체크했던 탓에 나와 친구는 지도 한 장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차가 없으니 최대한 도심 위주로, 너무 범위를 넓게 잡지 말고 한 곳을 진득하게 보자 라는 계획만을 세웠을 뿐이었다.
그러니 삼성혈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고 아는 것 또한 있을 리 없었다. 얼핏 탐라국의 시작 어쩌고 하는 말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좋았어. 신화와 관련되어 있으면 어쨌든 괜찮겠지. 가자! 게다가 고기국수 집하고도 가깝다! 이런 이유로 결정된 코스였다. 그렇기에 삼성혈에 막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삼십분쯤 휙휙 둘러보고 나오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삼성혈은 말 그대로 매력적이었다. 사랑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매력 덩어리였다.

한적한 숲속길을 걷다보면 보이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새가 담벼락 위에 앉아있었고 커다란 나무 아래에는 산딸기가 열려 있었다. 때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무언가 나무 위로 사라졌다. 그 소리를 따라 위를 올려다보면, 쭉 뻗은 나무잎들이 얼기설기 엃힌 바구니처럼 하늘을 담고 있었다.
한참을 목을 빼고 올려다봐도 그곳에 공허는 없었다.

그래. 저거야. 딱 저 정도로 비춰 보이는 하늘이 좋아.
멍하니 서 있어도, 느릿하게 걸어도 괜찮았다. 숨통이 트였다.
자신을 방해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던 일상 속 바쁨은 그곳엔 없었다. 혼자 오도카니 하늘을 떠 받쳐야 하는 가엾은 나무도 없었다. 그러니 걷고 걷고, 하염없이 그 안을 돌며 즐거워 할 수 밖에.
그다지 작은 편이 아닌 삼성혈 안을 두 바퀴 돌았을 쯤에는 같이 들어온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이젠 그만 나갈까. 망설였지만 나와 친구는 그 후로도 한시간여를 삼성혈에 더 머물렀다. 삼성혈은 기분좋은 숲속 산책로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밖이 이렇게 멋지니깐, 안은 시시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들어간 전시관에서 우리는 못이 박혀 버렸다. 

노다지다! 심봤다!
왜 아무도, 이 전시관 안이 이토록 근사하다는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던 걸까. 
나는 탐라국의 건국신화를 정교하게 재현해놓은 미니어쳐 앞에 들러붙어 심각하게 고민했다. 삼성혈 관련 유적 위치를 표시해놓은 미니어쳐 앞에서는 차가 없어 저곳을 향할 수 없는 원통함이 뼈에 사무치기도 했다. 같은 이유로 워홀리도 포기했던지라 더욱 더!
"겨울에는 차 렌트할 수 있으니깐 그때 다시 오면 되잖아. 그때 저쪽 쭉 돌자니깐.
그러니깐 미니어쳐 그만 노려보고, 그 깜빡이 그만 눌러대고 좀 가자고!"
친구가 팔을 잡아 끌 때까지 나는 더없이 초등학생스러운 모습으로 유적 표시 버튼을 누르며 감탄하고 있었다. 제주도 전역을 유적별로 표시해 놓은 대형 미니어쳐에는, 버튼을 누르면 건국 신화와 관련있는 유적지에 빨간 불이 들어오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릴적 버튼을 누르겠단 이유 하나로 말하는 인형을 갖고 싶어했던 내게 그 시스템은 상당히 직격탄이었다. 물론 그 다음 몇 발자국 움직인 뒤에는 친구가 제사용기와 옛 식기구에 꽃혀 도로 못박혀 버렸지만.
이래서 나와 친구가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덕은 덕끼리 통한다는 진리가 괜히 있는게 아니다. 참고로 이 친구는, 일본 하우스 텐보스에서 네덜란드 건물 보겠다고 더위 잘먹는 나를 이끌고 땡볕 삼십분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게 했던 친구다. 그러니 버튼에 심취했던 내 모습 정도는 이젠 잊어 주었겠거니 한다.
그렇게 전시관을 둘러보고 영상실에 가서 애니메이션까지 본 덕분에 우리는 도합 두시간 반을 삼성혈 안에서 보냈다. 애니메이션도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어서 또한번 깜짝 놀라기도 했다.(뒷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삼성혈 홈페이지의 일부가 약간 마음에 걸린다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지금도 신경쓰이는 이야기도 있다. 벽랑국을 어디로 추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겠지만. 나는 소랑도 지지자라 애니메이션이 별 문제 없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삼성혈 홈페이지에서 벽랑국을 일본이라 답한 운영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건, 그렇게 쉽게 답해서는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시간가는지 몰랐던지라 삼성혈을 나오며 시계를 확인하고 얼마나 깜짝 놀랐던지.

삼신인이 잠시 시간의 흐름을 멈추어 주는 숲.
그곳이 삼성혈이었다.
P. S :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이 전시관이 모두에게 매력적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와 함께 전시관으로 들어섰던 사람들은 미니어쳐 사진을 찍다가 관리인에게 지적당하자 휭하니, 5분만에 사라져 버렸으니깐. 흥미도 관심도 없는데 단지 사진을 찍기 위해 무언가를 보고 여행하는 건 그다지 권하고 싶은 일은 아니다.
숲과 산책, 신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삼성혈은 그저 뎅그라니 크기만 한 공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참고로 세가지 다 좋아하지 않아도, 숲과 산책을 좋아하는 것 만으로도 들릴 가치가 있다. 정말로. 실제로 어떤 여행 수기에서는 이곳을 산책공원으로 소개하고 있는 곳도 있는 모양이다. 나쁘지 않다. 자신에게 즐거운 방향에서 바라보고 즐기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by 타랑위진 | 2009/05/31 19:43 | ★여행하는 고양이★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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