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26일
제주도. 그 맛스러운 섬에 가다 - ②고기국수와 막걸리
안녕. 제주.
긴 기지개를 펴며 제주 공항에 발을 디뎠다. 양 옆으로 쭉 늘어선 나무의 생김새가 낯설다. 분명 예전에 한 번 와 봤던 곳인데도, 처음 오는 것마냥 느껴지는 건 세월 때문일까. 아니면 제주도와 완벽하게 새로운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는 마음 때문일까.
어쨌든 낯선 나무 모양새 하나에도 신기해할 수 있다는 건, 여행을 시작하는 좋은 징조다. 그만큼 내가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공항을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름아닌 버스찾기!
보통 제주도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세 가지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첫째는 렌트카. 최소 하루 5만원 정도의 렌트비에, 2박 3일 6~10만원 사이의 기름값이 드는 방법이다. 이동이 수월해지는 만큼 일정을 짜는 데 제약이 줄어들기 때문에,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놀메놀메 걷기. 제주도의 올레길이 유명해지면서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방법이다. 제주도는 걸어서 구경해야 제맛이다는 주장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단 짧은 시간안에 제주도를 맛보러 간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올레길 코스에 엃매이기보다는 그냥 발 닿는데로 걷기를 추천하고 싶다. 세번째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다. 렌트카를 할 형편이 안되거나, 모터싸이클 애호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싸이클을 타고 서부 해안 도로를 달리면 그 기분이 끝내준다는 것이다.
나와 친구도 처음에 당연히 차를 렌트할 생각이었다. 나는 면허가 없지만(앞으로도 없을 확률이 높다.) 얼마전 면허를 딴 친구를 푹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렌트카는 운전면허 발급 1년이 넘지 않은 운전자에게는 렌트를 하지 않는단다! 콰광쾅. 친구의 면허증이 1년을 넘기는 건 이번년 겨울. 무려 6개월 뒤에야 렌트가 가능하다는 이야기!
결국 우리는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자전거는 자전거를 못타는 친구 때문에 패스. 오토바이는 면허 없는 나 때문에 안돼. 놀메놀메 걷기에는 보고 싶은게 너무 많아. 한참을 야단스럽게 제주 지도를 들여다보던 우리는, 결국 '대중교통 이용하기' 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대중교통 이용하기가, 제주도 여행에서는 그다지 많이 쓰이지 않는다 들었다.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말에 의하면 '버스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는 않다' 라는게 그 이유였다.
제주도가 섬이긴 하지만 깡촌도 아닌데 버스가 안오면 얼마나 안오겠어? 나와 친구는 수많은 여행기를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슬그머니, 버스비 말고도 상당한 금액의 택시비를 예산 경비에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도 친구도 소심한 이십대 아가씨들일 뿐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버스 노선판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삼성혈이라는 지명이 있을리가 없다. 결국 버스 노선도 앞을 지나가던 제주도 아줌마를 붙잡고 물었다.
"아줌마. 여기 삼성혈 가려면 몇 번 버스 타야해요?"
"저거 타. 저거."
아줌마는 막 출발하려는 노란 시내버스 하나를 가리키셨다. 오옷. 럭키. 재빨리 버스로 달려갔다.
"아저씨. 이 버스 삼성혈 가나요?"
"갑니다. 삼성 초등학교 앞에서 내리세요."
척하면 딱. 내려야 할 곳까지 친절하게 말씀해 주시는 버스 기사님의 센스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의자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한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느꼈다.
버스에서 안내방송이 나오는 건 엄청나게 좋은 일이다!
이 여행 직전에 다녀왔던 홍콩 여행에서는 버스를 타도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아서 어찌나 마음을 졸였던지. 바깥 풍경을 감상할 여유고 뭐고 없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물론 안내 방송이 나왔어도 홍콩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로.
생각해보면 언어란 여행에서 참으로 복잡미묘한 역할을 한다. 너무 익숙한 언어를 쓰는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웬지 설레임이 덜하다. 제주도 여행에서 정말 순도 100% 제주도 말을 쓰는 택시 기사님과 대화를 했던 순간, 밀려오던 두근거림이 문득 떠오른다. 하지만 너무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그게 또, 뒷통수에 땀을 흐르게 만든다.
두근두근 여행의 긴장을 즐기고 싶다면 외국으로. 편한 릴렉스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국내로.
여행의 이 법칙은 어쩌면 언어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삼성초교. 삼성초교 앞입니다. 경쾌한 안내 방송 소리가 우리의 갈 길을 이끌어 주었으니 말이다. 안내 방송 뿐만이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린 후에는 또다시 제주도 주민의 친절한 안내가 길을 이끌어주었다.
덕분에 버스에서 내리고 5분 후, 우리는 삼성혈 앞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시원한 나무 간판이 걸려있고 그 속으로 구불구불 숲길이 이어지는 것이, 밖에서 언뜻 보기만 해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시원함을 느끼기 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고기국수 먹기!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훌륭한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삼성혈 앞에 도착한 오후 3시 즈음까지 빵 한 덩어리만을 쑤셔넣었던 내 배는 강력하게 음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친구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배가 고프면 성깔을 부리는 내 성격을, 친구는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친구는 사이좋게 손잡고 삼성혈 앞 도로 건너에 있는 삼대 국수 회관으로 향했다.
삼대국수 회관은 제주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에서도, 제주도 관련 여행서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다. 진한 고기국물에 두꺼운 국수 면발이 잊을 수 없는 맛을 자랑한다나.
워낙 유명하기에 으리으리 큰 가게를 상상했지만 눈에 들어온 가게는 작고 소박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살펴봤다. 고기국수와 멸치국수. 국밥과 돔베고기.
돔베고기가 뭔지 엄청나게 신경쓰였지만 일단 고기국수를 주문했다. 식당 안에는 사람들이 제각각 자리를 잡고 맛있게 한 그릇씩을 비워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배 안에서 천둥이 울릴 듯 해 놓여진 밑반찬을 넙죽넙죽 주워먹었다.
밑반찬을 주워 먹는 내내, 벽에 걸린 '조껍질 막걸리' 가 어찌나 눈에 들어오던지.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훌륭한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삼성혈 앞에 도착한 오후 3시 즈음까지 빵 한 덩어리만을 쑤셔넣었던 내 배는 강력하게 음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친구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배가 고프면 성깔을 부리는 내 성격을, 친구는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친구는 사이좋게 손잡고 삼성혈 앞 도로 건너에 있는 삼대 국수 회관으로 향했다.
삼대국수 회관은 제주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에서도, 제주도 관련 여행서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다. 진한 고기국물에 두꺼운 국수 면발이 잊을 수 없는 맛을 자랑한다나.
워낙 유명하기에 으리으리 큰 가게를 상상했지만 눈에 들어온 가게는 작고 소박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살펴봤다. 고기국수와 멸치국수. 국밥과 돔베고기.
돔베고기가 뭔지 엄청나게 신경쓰였지만 일단 고기국수를 주문했다. 식당 안에는 사람들이 제각각 자리를 잡고 맛있게 한 그릇씩을 비워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배 안에서 천둥이 울릴 듯 해 놓여진 밑반찬을 넙죽넙죽 주워먹었다.
밑반찬을 주워 먹는 내내, 벽에 걸린 '조껍질 막걸리' 가 어찌나 눈에 들어오던지.

드디어 고기국수가 앞에 놓여져 한 숟가락을 목 아래로 넘긴 순간 왜그리 막걸리가 눈에 걸렸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깔삼하게 진한 고기국물 맛이 막걸리 생각을 간절히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식당 벽에 붙은 신문 기사에는 '해장에 최고. 고기국수' 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지만 알 사람은 다 안다.
해장에 최고인 국물이 곧 술을 부르는데도 최고라는 사실을.
정말 일본의 어느 라멘 국물에 뒤지지 않는 국물에, 국물보다 약간 아쉬운 면발을 후룩후룩 넘기며 넘길수록 막거리 생각은 간절해졌다. 주신의 끈질긴 부름을 당해내지 못한 나는 결국,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절대 봉인을 다짐했던 대낮 술마시기 모드를 전개하고 말았다. 말간 대낮에 사발에 막걸리 부어 친구와 건배하고, 벌건 고추가루 둥둥 뜬 고기국수 국물로 입가심을 하니 꼭 대학 신입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이것이 막걸리의 힘이련가.
조껍질 막걸리는 서울에서 마시던 막걸리보다 그 빛이 연하고, 맛도 매우 담백했다.
깔삼하게 진한 고기국물 맛이 막걸리 생각을 간절히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식당 벽에 붙은 신문 기사에는 '해장에 최고. 고기국수' 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지만 알 사람은 다 안다.
해장에 최고인 국물이 곧 술을 부르는데도 최고라는 사실을.
정말 일본의 어느 라멘 국물에 뒤지지 않는 국물에, 국물보다 약간 아쉬운 면발을 후룩후룩 넘기며 넘길수록 막거리 생각은 간절해졌다. 주신의 끈질긴 부름을 당해내지 못한 나는 결국,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절대 봉인을 다짐했던 대낮 술마시기 모드를 전개하고 말았다. 말간 대낮에 사발에 막걸리 부어 친구와 건배하고, 벌건 고추가루 둥둥 뜬 고기국수 국물로 입가심을 하니 꼭 대학 신입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이것이 막걸리의 힘이련가.
조껍질 막걸리는 서울에서 마시던 막걸리보다 그 빛이 연하고, 맛도 매우 담백했다.

계산을 마치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물었다.
"아줌마. 돔베고기가 뭐예요?"
"그게, 고기에 뼈가 붙어있는데. 그걸 뜯어먹는 게 돔베고기죠."
삼대회관을 나서며 친구는 말했다. 국수가 너무 푸짐해서 배가 터질 것 같다고.
하지만 실제로 국수를 남긴 친구와 달리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친구 편육까지 빼앗아 먹은 나는 슬그머니 미소만 지었다.
"아줌마. 돔베고기가 뭐예요?"
"그게, 고기에 뼈가 붙어있는데. 그걸 뜯어먹는 게 돔베고기죠."
삼대회관을 나서며 친구는 말했다. 국수가 너무 푸짐해서 배가 터질 것 같다고.
하지만 실제로 국수를 남긴 친구와 달리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친구 편육까지 빼앗아 먹은 나는 슬그머니 미소만 지었다.
이젠 내가 맛본 제주도의 첫 맛은 찬밥이 아니다.
뜨뜻하고 푸짐한 고기국수, 그 진한 인정의 맛이다.
뜨뜻하고 푸짐한 고기국수, 그 진한 인정의 맛이다.
# by | 2009/05/26 12:50 | ★여행하는 고양이★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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