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한 자국 뒤로 두 자국. 열 자국은 칼 선 다리 밟아 들어가고,
뒤로 열 자국 밟아나갈 때 한 발은 땅에 놓고 한 발은 칼 선 다리 위에 있을 적에 살짝 발 뒤꿈치가 베어지니
자청비가 땅 아래 내려서며 속치맛자락으로 싹 쓸었더니 속치마가 더러워지는구나.
문도령 부모가 달려들어 "이러한 아기씨가 어디 있으랴. 내 며느리감으로 넉넉하다."
자청비 말을 하되 "어머님아. 아버님아. 나도 인간 세상에 증표나 마련하오리다."
그리하야 딸자식은 열다섯 십오 세가 넘으면 달마다 몸에 구실 오는 법도를 마련하더라.
- 세경 본풀이 中 마지막 장면.

하긴. 내가 그녀의 땅을 찾아간다는데 청비 언니가 내게 심술을 부릴 리가 없지.
뒤로 열 자국 밟아나갈 때 한 발은 땅에 놓고 한 발은 칼 선 다리 위에 있을 적에 살짝 발 뒤꿈치가 베어지니
자청비가 땅 아래 내려서며 속치맛자락으로 싹 쓸었더니 속치마가 더러워지는구나.
문도령 부모가 달려들어 "이러한 아기씨가 어디 있으랴. 내 며느리감으로 넉넉하다."
자청비 말을 하되 "어머님아. 아버님아. 나도 인간 세상에 증표나 마련하오리다."
그리하야 딸자식은 열다섯 십오 세가 넘으면 달마다 몸에 구실 오는 법도를 마련하더라.
- 세경 본풀이 中 마지막 장면.

2009년 5월 18일. 제주도로 떠나기 위해 공항을 찾았다.
내사랑 자청비 언니가 부디 내게 심술을 부리지 않게 해 주십사 여행 날짜가 다가오는 내내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 생리날짜가 불규칙한 나는 종종 여행기간과 생리 날짜가 겹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이번 달도 그랬다. 배는 살며시 아파오고 몸은 부어 오르기 시작했지만 소식은 없었다. 제발 여행 끝나고를 외치며 공항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터졌다. 얼굴에서 핏기가 싸하니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언니,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감히 여신님께 원망섞인 투정을 부려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재빨리 약국으로 달려가는 수 밖에.
그런데 이게 왠일인지. 역시 청비 언니는 나를 미워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평상시라면 땅을 구르며 데굴데굴 굴렀을 생리통이 어째 잠잠하다.
내사랑 자청비 언니가 부디 내게 심술을 부리지 않게 해 주십사 여행 날짜가 다가오는 내내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 생리날짜가 불규칙한 나는 종종 여행기간과 생리 날짜가 겹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이번 달도 그랬다. 배는 살며시 아파오고 몸은 부어 오르기 시작했지만 소식은 없었다. 제발 여행 끝나고를 외치며 공항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터졌다. 얼굴에서 핏기가 싸하니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언니,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감히 여신님께 원망섞인 투정을 부려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재빨리 약국으로 달려가는 수 밖에.
그런데 이게 왠일인지. 역시 청비 언니는 나를 미워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평상시라면 땅을 구르며 데굴데굴 굴렀을 생리통이 어째 잠잠하다.
하긴. 내가 그녀의 땅을 찾아간다는데 청비 언니가 내게 심술을 부릴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하얀 알약 두 알을 꿀꺽 삼키고 잠시 휴게실에서 눈을 감았다.
자청비. 제주도의 토박이 여신인 그녀는 내가 제주도에 관심을 가지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대학교 3학년 말. 열심히 레포트 자료를 찾다 알게 된 그녀가 아니라면 나는 제주도에 무관심한 채 평생을 지냈을지 모른다.
아니,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의 기억만으로 제주도를 평가하며 여행 간다는 사람을 뜯어말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잠깐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얘기하자면, 그건 말 그대로 '비극' 이었다. 도착과 동시에 비가 억수로 쏟아졌고, 그 와중에도 정해진 일정은 지켜야 한다며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정체모를 박물관으로, 우비 한 장 주지 않고 내몰았었다. 아이들은 비를 맞고 쫄딱 젓어 덜덜 떨며 버스에서 쪼그려 자다가 숙소에 도착했다.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며, 숙소 주인은 학생들에게 찬 밥을 먹였다.
이게 수학여행 첫째 날이었으니 그 뒤는 안봐도 비디오요, 아하면 어이지 아니한가. 철의 여인이 되어버린 지금과 달리 연약한 면도 남아있던 고등학교 시절의 어린 나는 감기로 수학여행을 시작했고, 셋째날에는 더위먹은 채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더위먹은 이유도 참으로 예술이었다. 버스 에어컨이 고장나서.
단언컨데 제주도는 수학여행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어떻게든 돈 뜯으려 작당한 학교측과 장사꾼들의 야바위에 놀아나며 구경하기 좋은 곳이 아니다. 하긴, 그렇게 여행하면 천하의 명승지라도 좋겠는가 싶지만 말이다.

자청비. 제주도의 토박이 여신인 그녀는 내가 제주도에 관심을 가지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대학교 3학년 말. 열심히 레포트 자료를 찾다 알게 된 그녀가 아니라면 나는 제주도에 무관심한 채 평생을 지냈을지 모른다.
아니,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의 기억만으로 제주도를 평가하며 여행 간다는 사람을 뜯어말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잠깐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얘기하자면, 그건 말 그대로 '비극' 이었다. 도착과 동시에 비가 억수로 쏟아졌고, 그 와중에도 정해진 일정은 지켜야 한다며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정체모를 박물관으로, 우비 한 장 주지 않고 내몰았었다. 아이들은 비를 맞고 쫄딱 젓어 덜덜 떨며 버스에서 쪼그려 자다가 숙소에 도착했다.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며, 숙소 주인은 학생들에게 찬 밥을 먹였다.
이게 수학여행 첫째 날이었으니 그 뒤는 안봐도 비디오요, 아하면 어이지 아니한가. 철의 여인이 되어버린 지금과 달리 연약한 면도 남아있던 고등학교 시절의 어린 나는 감기로 수학여행을 시작했고, 셋째날에는 더위먹은 채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더위먹은 이유도 참으로 예술이었다. 버스 에어컨이 고장나서.
단언컨데 제주도는 수학여행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어떻게든 돈 뜯으려 작당한 학교측과 장사꾼들의 야바위에 놀아나며 구경하기 좋은 곳이 아니다. 하긴, 그렇게 여행하면 천하의 명승지라도 좋겠는가 싶지만 말이다.

그러니 제주도라는 섬이 가진 매력을, 그 비극적인 기억에 잡아먹히게 두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정말로 다행이었다.
거기에는 자청비를 비롯한 제주의 신들이 단연 일등 공신이었지만, 다른 결정적인 두 공신들도 있었다.
하나는 제주도의 역사였다. 제주도는 오롯히 자신만의 역사를 떠안은,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육지'의 설움을 온 몸으로 받아낸 곳이었다. 어디 감수꽈. 그 무심한 인사 하나에도 절절한 이야기를 안고 있는 섬. 이재수의 난부터 4. 3 사건까지 육지의 고름을 피눈물로 받아내었던 섬.
한때 4. 3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 위해 제주도 역사를 미친 듯 조사했었다. 그리곤 조사 한달 뒤 조용히 계획을 접었다. 그것은 감히, 어줍잖게 소설을 '공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게 된 순간 제주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공신은 다름아닌 허영만 선생님의 '식객' 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오롯히 제주도의 신화와 역사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제주도에 그토록 맛있는 음식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제주도에서 먹은 첫 밥이 찬밥이었으니 그럴만 하지 않은가.
하지만 <식객>에 나온 순대국수는 내게 입맛 다시게 하기 충분했다. 그렇지 않아도 효과음만으로 사람을 군침돌게 만드는 만화를 그리시는 허영만 선생님이시다. 그분이, 그렇지 않아도 좋아하는 순대국밥 이야기를, 그것도 제주도에만 있다는 순대국밥 이야기를 펼치시는데 어찌 담담히 있을 수 있겠는가. 재빨리 다른 사람들의 제주도 여행기를(물론 음식 위주로) 흝어본 나는 최종적으로 순대국밥이 아닌, 고기국수에 꽃혔다. 라면 먹으러 일본에도 가는데, 그보다 맛있을 듯한 고기국수 먹으러 우리나라 땅 제주도에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결심했다. 결국 제주도에 한번, 제대로 가 봐야겠다, 하고.
거창한 듯 애기했지만 실제로 여행 결정을 내리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결국 고기국수라는 이야기이다.
내가 원래 좀, 그렇다.

거기에는 자청비를 비롯한 제주의 신들이 단연 일등 공신이었지만, 다른 결정적인 두 공신들도 있었다.
하나는 제주도의 역사였다. 제주도는 오롯히 자신만의 역사를 떠안은,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육지'의 설움을 온 몸으로 받아낸 곳이었다. 어디 감수꽈. 그 무심한 인사 하나에도 절절한 이야기를 안고 있는 섬. 이재수의 난부터 4. 3 사건까지 육지의 고름을 피눈물로 받아내었던 섬.
한때 4. 3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 위해 제주도 역사를 미친 듯 조사했었다. 그리곤 조사 한달 뒤 조용히 계획을 접었다. 그것은 감히, 어줍잖게 소설을 '공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게 된 순간 제주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공신은 다름아닌 허영만 선생님의 '식객' 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오롯히 제주도의 신화와 역사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제주도에 그토록 맛있는 음식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제주도에서 먹은 첫 밥이 찬밥이었으니 그럴만 하지 않은가.
하지만 <식객>에 나온 순대국수는 내게 입맛 다시게 하기 충분했다. 그렇지 않아도 효과음만으로 사람을 군침돌게 만드는 만화를 그리시는 허영만 선생님이시다. 그분이, 그렇지 않아도 좋아하는 순대국밥 이야기를, 그것도 제주도에만 있다는 순대국밥 이야기를 펼치시는데 어찌 담담히 있을 수 있겠는가. 재빨리 다른 사람들의 제주도 여행기를(물론 음식 위주로) 흝어본 나는 최종적으로 순대국밥이 아닌, 고기국수에 꽃혔다. 라면 먹으러 일본에도 가는데, 그보다 맛있을 듯한 고기국수 먹으러 우리나라 땅 제주도에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결심했다. 결국 제주도에 한번, 제대로 가 봐야겠다, 하고.
거창한 듯 애기했지만 실제로 여행 결정을 내리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결국 고기국수라는 이야기이다.
내가 원래 좀, 그렇다.

그나저나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아무래도 자청비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내사랑 그녀가 바리데기만큼 많이 알려진 여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살짝 분하기도 하지만 나는 바리데기도 사랑하니깐.
자청비는 제주도의 토박이 여신이다. <세경 본풀이>의 주인공인 그녀는 '파란만장하고 부당한' 삶을 이겨낸 당찬 아가씨이다. 바리데기 공주가 겪은 고난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바리데기는 그래도 서천서역 찾아가는 길 괴롭히는 사람이라도 없었다. 판본에 따라 빨래 시키는 할머니는 나오지만, 적어도 성희롱하는 남정네들에게 시달림을 당하지는 않는다.
너 흰빨래가 검어질 때까지 빨래할래, 아니면 성희롱 당할래.
주변 여자 붙잡고 물어봐라. 누구든 빨래한다고 하지. 게다가 바리데기가 무장승에게 사랑받았던 것에 비하면 자청비의 남편 문도령은 한없이 무심하기만 하다. 자기 아내가 부모님에게 시험을 당해 날 잘 든 칼 위에 맨발로 올라가게 생겼는데 모른척 하는 꼴이라니. 정말로, 거기까지 읽어내려가면 저절로 자청비에게 말을 걸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자청비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고생을 겪었으면서도, 바리데기와는 달리 농경의 신이 되어 끝까지 현실의 사람들을 보살펴 준 언니.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나누었으면 한다는 지극히 개인적인(거기에 애교섞인) 이유로 온세상 딸들에게 한달에 한 번 피를 보게 만든 언니. 하지만 사실은, 칼이 생살 도려내는 아픔을 겪고 얻어낸 성과를 약간의(때로는 약간이 아니라 기절할 정도의 아픔이 되어 버리지만) 아픔으로 온 세상 딸들뿐만이 아닌 온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위대한 언니. 자청비 언니 팬클럽이라도 만들 것만 같은 열성팬의 모습으로 보이겠지만, <세경 본풀이>를 읽어본다면 누구든 자청비를 저절로 언니라고 부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매력적이니깐.(물론 누나라고 부르는 남성팬이 늘어나도 대환영!)
제주도로 떠나는 작은 비행기가 공중에 떴다. 점차 서울 땅이 멀어져 가는 것을 내려다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내사랑 그녀가 바리데기만큼 많이 알려진 여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살짝 분하기도 하지만 나는 바리데기도 사랑하니깐.
자청비는 제주도의 토박이 여신이다. <세경 본풀이>의 주인공인 그녀는 '파란만장하고 부당한' 삶을 이겨낸 당찬 아가씨이다. 바리데기 공주가 겪은 고난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바리데기는 그래도 서천서역 찾아가는 길 괴롭히는 사람이라도 없었다. 판본에 따라 빨래 시키는 할머니는 나오지만, 적어도 성희롱하는 남정네들에게 시달림을 당하지는 않는다.
너 흰빨래가 검어질 때까지 빨래할래, 아니면 성희롱 당할래.
주변 여자 붙잡고 물어봐라. 누구든 빨래한다고 하지. 게다가 바리데기가 무장승에게 사랑받았던 것에 비하면 자청비의 남편 문도령은 한없이 무심하기만 하다. 자기 아내가 부모님에게 시험을 당해 날 잘 든 칼 위에 맨발로 올라가게 생겼는데 모른척 하는 꼴이라니. 정말로, 거기까지 읽어내려가면 저절로 자청비에게 말을 걸게 된다.
"언니야. 그런 남자 뭐가 좋다고 그 고생하면서 찾아갔니?"
그렇기에 나는 자청비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고생을 겪었으면서도, 바리데기와는 달리 농경의 신이 되어 끝까지 현실의 사람들을 보살펴 준 언니.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나누었으면 한다는 지극히 개인적인(거기에 애교섞인) 이유로 온세상 딸들에게 한달에 한 번 피를 보게 만든 언니. 하지만 사실은, 칼이 생살 도려내는 아픔을 겪고 얻어낸 성과를 약간의(때로는 약간이 아니라 기절할 정도의 아픔이 되어 버리지만) 아픔으로 온 세상 딸들뿐만이 아닌 온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위대한 언니. 자청비 언니 팬클럽이라도 만들 것만 같은 열성팬의 모습으로 보이겠지만, <세경 본풀이>를 읽어본다면 누구든 자청비를 저절로 언니라고 부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매력적이니깐.(물론 누나라고 부르는 남성팬이 늘어나도 대환영!)
제주도로 떠나는 작은 비행기가 공중에 떴다. 점차 서울 땅이 멀어져 가는 것을 내려다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안녕. 육지.
at 2009/05/22 13:06

![[플라아카데미]릴든 소속비커](http://wewe.x-y.net/bbs/data/ddddddd/2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