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02일
살육에 이르는 병 - 반전의 묘미
※조금이지만 미리니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사진 아래를 읽지 말아 주십시오.※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사진 아래를 읽지 말아 주십시오.※

1. 너무나 익숙해진 '병'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일그러진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서사의 하나가 되었다.
그 이름을 붙인 것도, 분석한 것도 사람이며 다양한 병리적 현상을 너무나도 포괄적인 이름 아래 하나로 묶어 버린다는 의심은 피할 길이 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작품들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주제로 선택하거나, 혹은 분석하는 타자에 의해 자신들의 작품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주제로 했다고 분석당하고 있다.
이 고전적인 심리학적 분석을 빌어 말하자면, [살육에 이르는 병] 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지닌 한 남자의 연쇄살인 이야기이다.
어릴 적부터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어머니를 사랑해 온 한 남자.
하지만 그런 어머니가, 자신이 너무나 싫어하는 아버지의 것임을 깨달은 남자.
살인을 거듭하고 나서야 자신의 '이상적인' 사랑은 '자신을 닮은' 어머니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남자 말이다.
뻔한 이야기이다. 나르시즘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시체 애호가. 엽기살인.
갖가지 자극적이면서도 뻔한, 삼류 스캔들 신문의 앞면을 장식할 듯한 단어들로 이 소설은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소재 해석의 참신성] 을 기대하고 이 소설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그만큼의 실망을 맛봤다.
[살육에 이르는 병]에 해석의 참신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딱 모두가 상상하는 만큼의 해석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적어도 단 한 번, 뒷통수를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게 된다고 장담할 수 있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2.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
'텍스트 트릭'.
[살육에 이르는 병]은 텍스트 트릭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소설이다.
작가 아비코 다케마루의 이름에 걸맞는 소설인 셈이다. 작가로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지 모르나, 이 소설을 읽다보면 그의 탐미적이면서도 철저한 작품관이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그는 '무너뜨리는' 것을 즐기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살육에 이르는 병] 역시, 여김없는 '무너뜨리기' 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텍스트 트릭'은, 작품 내에 일정한 장치를 함으로서 의도적으로 독자에게 무언가를 '숨기' 거나 '속이'는 일을 말한다.
대부분의 추리(범죄)소설은 이 '텍스트 트릭'을 좋던지 싫던지 사용해야만 한다. 이 장르의 소설들은 독자에게 '혼돈' 을 줌으로서 그 반응을 이끌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물에 혼동을 준 고전적인 텍스트 트릭으로는 포우의 [모르간 살인사건]을 들 수 있다.
이 트릭은 '범인은 당연히 사람일 것이다' 라는 사람들의 편견 아래 기인하고 있다. 이러한 편견만으로도, 포우는 훌륭히 트릭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의 필력도 물론 한 몫 했겠지만, 아직 '무수히 많은' 트릭의 가능성들이 남아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작가들은 '트릭'을 만들어 내는데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인물이나 소재, 이야기 속의 장치만으로는 독자에게 혼돈을 주는 데 한계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빠르게 많은 트릭에 익숙해져 버렸다. 이젠 오랑우탄이 범인이라는 것 정도로는 아무도 놀라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말이 더 이상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더 이상 새로운 소재는 없다.
그것을 어떻게 가공하느냐가 있을 뿐이다.'
3. 무너뜨리기의 미학
[살육에 이르는 병]을 읽을 때에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절대 맨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읽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후루룩 넘기다 실수로라도 마지막을 봐 버린다면 소설을 읽는 재미는 절반의 절반 정도로 격감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 소설의 결정타가 바로 [무너뜨리기] 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것, 그렇기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이 무너질 때 공포와 혼돈을 느낀다.
그것만큼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살육에 이르는 병] 은 이러한 무너뜨리기의 미학을 위해 작품 전체를 사용했다. 구성에서 인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말이다.
미묘한 단어를 채택해 눈을 가리고, 두 명의 화자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킴으로서 대상의 확정을 피한다.
번역의 문제도 있겠지만, 이 부분에서 약간의 무리수가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독자는 허둥지둥 앞으로 돌아가 자신이 무심히 넘긴 부분들을 다시 읽어 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살육에 이르는 병] 을 모두 읽고 난 후 나 역시 저랬다.
허둥지둥 앞으로 돌아가 부분부분을 헤쳐보고,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을 다시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반전을 제대로 줬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합격점인 셈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반전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사회의 병리를 날카롭게 파헤진 소설이라는 광고 문구가 무색하게 느껴진다. 작가가 내놓은 병리의 원인은 결국, 우리가 지겹도록 들어왔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당연시된' 병리의 원인을 부정해 주길 바랬던 마음에는 실망스러운 해답이었다.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반전' 만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봐도 좋을 책이다.
참고로 19세 이상 구독가능 소설이기 때문에 미성년자는 읽을 수 없다.
(소재와 내용 면에 있어서 왜 19세 이상인지 읽어보면 납득이 된다.)
# by | 2008/04/02 21:01 | ★Review★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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