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02일
추격자 - 부여받은 것과 부여받지 못한 것.
미리니름 있습니다.
아직 추격자를 보지 않으신 분들 중 미리니름을 원치 않으시는 분은 사진 아래를 읽지 마십시오.
아직 추격자를 보지 않으신 분들 중 미리니름을 원치 않으시는 분은 사진 아래를 읽지 마십시오.

[인간미]를 내세우는 영화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단 주인공이 '어쨌든' 범인보다는 착하다는 것. 사로잡힌 인질에게는 그 인질이 살아야만 하는, 혹은 주인공의 마음을 흔들리게 할 수 있는 '어린아이' 가 있다는 것. 인질은 몇 번의 위기를 겪지만 주인공에 의해 구원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인간미라고 하면 참으로 값싼 단어처럼 들리지만, 사실 현실에거 이 인간미를 구현하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애시당초 인간미라는 게 대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조차 없습니다.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만 할 것 같은 행동들, 보면 가슴이 찡해지고 그래, 저래야 사람이지 하는 말이 나오는 그 무언가.
하지만 '사람으로서 당연하게'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나쁜 놈과 덜 나쁜 놈. 살인자를 쫓는 포주.
처음에 엄중호(김윤석 역)는 정말로 나쁜 놈처럼 나옵니다.
아니, 두말할 필요 없이 여자들을 등쳐먹고 사는 포주라는 직업 자체가 나쁜놈이니 나쁜놈이 맞습니다.
몸이 아프다는 여자를 으름장을 놓아 손님을 받으러 가게 할 때까지만 해도 그 '나쁜놈' 이미지는 일괄적으로 유지됩니다.
처음 살인마를 쫓는 이유도 여자들을 걱정해서가 아닙니다.
지영민(하정우 역)이 여자들을 납치해 자신에게 금전적인 손해를 입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엄중호의 태도는 영화 중반을 지나면서 급격히 변화합니다.
지영민이 살인마라는 것을 믿게 된다는 것은, 사라진 여자들이 이미 죽었을 거란 사실 역시 알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게다가 사라진 마지막 여자, 미진에 대한 본격적인 추적이 시작되면 엄중호는 더 이상 나쁜 놈으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미진의 딸의 입원 각서에 망설이면서도 싸인을 합니다. 초반에 보여주었던 엄중호의 모습이라면, 내가 왜 애 입원비를 내야돼? 라면서 볼펜이라도 한번 내던진 뒤 싸인하는 게 더 어울렸겠지요.
미진의 어린 딸의 등장으로 엄중호에게는 인간미를 발동시킬 수 있는 '명분'이 주어진 것입니다.
아무 의미 없는 살인마 지영민.
감독은 '살해 당하는 사람의 시점, 그 살해당한 사람을 위해 범인을 쫓는 단 한 사람'의 입장에서 영화를 전개시키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영화 속에서도 지영민이 어째서 살인을 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습니다. 성불구자라서,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등 여러가지 추측만이 난무할 뿐입니다. 지영민의 과거사는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플래시 백으로 다뤄지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살인자의 과거 - 어째서 살인을 해야 했는가, 그 이유가 어떠한 정당성을 띄고 있는가는 관객들에게 살인마를 용서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오로라 공주]의 경우는 살인마의 행동과 그녀의 과거에 초점을 맞춰, 살해당한 사람들을 소도구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모정에 공감하는 관객들은 그녀의 엽기적인 살해 행각보다 그녀가 가진 당연한 인간미, 모정이라는 것에 집중하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인간미를 불러 일으키는 '명분'이 됩니다.
어쩌면, 어떤 과거를 지녔을지도 모르는 살인마 지영민은 이 '명분'을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나쁜놈과 덜 나쁜놈. 추격하는 사람과 추격당하는 사람. 그 사이의 골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살인자와 포주, 둘 다 나쁘지요. 포주가 덜 나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사람을 '죽이지' 않을 뿐, 죽을만큼 괴롭게 하는 건 마찬가지이거늘.
성매매는 '각오할 수 밖에 없는' 여자들을 '강간'하는 행위일 뿐, 정당한 '거래'가 아니라고 봅니다. 전.
영화에서 미진은, 가까스로 지영민의 집에서 탈출했지만 구원받지 못합니다.
관객들은 미진의 탈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하지만 그 안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미진의 죽음으로 스토리는 사람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인간미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사라진 인간미의 기대는 엄중호에게 몰리게 됩니다.
엄중호에게는 또 하나의 명분이 주어지는 셈입니다.
결국 나쁜놈과 덜 나쁜놈의 차이는 하나뿐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을 납득할 만한 명분을 부여받았는가, 부여받지 못했는가.
영화 마지막, 아이의 손을 붙잡고 잠든 엄중호가 그 뒤 어떻게 살아갈지 살짝 궁금해졌던 건 저뿐일까요.
# by | 2008/03/02 15:30 | ★Review★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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