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7일
[린렌] 꿀벌 First

타운의 사람들은 모두, 하루빨리 정부가 그 살인마를 체포하기를 고대했다.
"연구소 사람들을 몽땅 죽이고 탈주했다잖아요. 글쎄."
"어휴. 그럼 실험체였단 거잖아. 어떤 위험한 능력이 있을지 모르는 거 아냐."
"그건 이미 인간이 아니니깐 말이죠."
"당연한 이야기를. 연구소의 실험체 따위가, 우리와 같은 인간일 리 없잖아요."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진홍빛으로 물드는 타운의 저녁 노을 속에 가라앉았다.
그 노을은 멸망한 도시 역시 똑같이 물들여갔다. 하지만 그 노을을 바라보는 사람은 멸망한 도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이 내려야 단 한명, 멸망한 도시에 숨어들어간 그림자가 움직일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회색의 투명한 날개를 가지고 있는 그 그림자.
3년 전부터 계속되는 국가 연구원 연속 살인 사건의 범인.
사람들은 그를, '꿀벌' 이라고 불렀다.
렌은 열 세 번 째 적혀있던 이름을 검은 펜으로 그었다. 펜이 잘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펜이 필요하다고 렌은 생각했다. 그리고 식수도.
먹지 않고는 버틸 수 있어도,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 없다. 그것은 긴 세월동안 직접 몸으로 익힌 사실이었다.
게다가 타운에 의심받지 않고 내려가기 위해서도 물은 필요했다. 옷과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지 않으면, 타운에 들어서자마자 체포될 것이 뻔했다.
멸망한 도시에는 이미 수도가 끊겨 있었다. 하지만 밤에 내려가는 것도 이젠 위험하다는 것을, 렌은 알고 있었다. 서서히 주위를 죄어오는 그림자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어쩌면 내일, 적어도 이번주 안에 그 그림자들은 멸망한 도시를 덥쳐 올 터였다. 바로 덥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멸망한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 그것은 정부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상할 수 없는 살육이 일어난 도시. 그 광기가 전염병 때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통설이었다. 누구도, 미치고 싶지는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 도시 안에서 이미 나는 미친 걸까.
렌은 무릎을 끌어안고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희미하게 웃으며 이름이 잔뜩 적힌 종이를 바라보았다. 적혀있는 이름은 모두 열 네 개. 앞으로 한명의 이름만 더 지워내면 모든 일이 마무리 될 터였다.
그때가 되면 죽을 수 있어.
렌은 무릎을 더 바짝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고 싶었다. 점점 심해지는 추위와 배고픔. 기계가 이식된 부분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아픔, 나날히 악화되는 머리의 통증까지.
이미 렌의 몸 상태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나빠져 있었다. 하지만 렌이 죽음을 바라는 것은 그런 아픔을 견디는 것이 지긋지긋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곧 있으면 만날 수 있어. 린."
마지막 한 사람의 피로 너에게 보내는 꽃을 완성하면, 나는 너에게 돌아갈 수 있게 되겠지.
내일 아침이 밝기 전에 몰래 타운으로 숨어들자. 렌은 그렇게 생각하며 앉은 채, 얕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처음 아픔을 느꼈던 것은 언제였던가.
옅은 잠은 언제나 몽롱한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렌이 그 기억속에서 보는 것은 언제나 같았다.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있는 따뜻하고 작은 손. 말랑하고 붉은 뺨. 자신과 똑같은 얼굴의 소녀가 늘 옆에 있었다.
렌. 렌. 이것 봐. 렌.
차가운 연구실의 공기 속에서, 그 소녀, 린의 주변만이 따뜻했다.
렌은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언제 태어났는지, 누가 연구실로 자신을 데려왔는지, 혹은 원래부터 연구실에서 태어난 것인지, 누가 이름을 지어 주었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난도질하는지.
실험은 매주 수요일마다 이루어졌다. 피부를 째고, 날카로운 관을 뇌에 찔러넣었다.
하지만 그때 렌은 아프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픔 없는 일상을 겪어본 적 없는 렌은, 아픔이라는 것이 어째서 특별한지, 그것이 왜 고통스러운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실험대에 누울 때마다, 린은 이 위에 올라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매스가 자신의 피부를 벗겨내는 건 아무렇지 않았지만, 린의 저 부드러운 피부를 벗겨내는 광경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연구원이 린을 데려가려 할 때면 자신이 가겠다고 자처했다. 연구원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것은 수술대 위에 올라가는 것이 린이냐,렌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중요한 건 그 위에 누군가가 있으면, 그걸로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직 '실험'을 위해 아이들을 기르고 있을 뿐이었으니깐.
렌이 수술대에 올라갔다 온 날이면, 린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렌의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작은 등을 껴안아 주는 내내 렌은 행복을 느꼈다. 린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수술대에 올라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렌. 렌. 렌. 노래하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린의 목소리가 조금씩 옅어졌다. 늘, 꿈 속에서 만나는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그 이상의 기억과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렌은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빠져들기 위해 의식을 집중하거나, 혹은 아예 잠에서 깨어나 새벽 내내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처음으로 아픔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날.
아픔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을 일컫는 말인지를 알게 되었던 날.
그날, 렌은 린을 잃었다.
렌은 밤하늘을 바라봤다.
높게 쌓인 철근 콘크리트의 산. 쓰레기의 악취가 밤바람의 서늘함에 섞여 몸 속에 퍼졌다. 오늘밤은 잠드는 데 실패했다. 아마 앞으로도 잠들지 못한다면, 마지막 이름을 지워내기 전 몸이 버텨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일 당장 찾아가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마지막 이름. 그 남자를 죽이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살인은 아무런 의미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로젤 게이드. 그는 3년전 이루어졌던 DOLL PROJECT의 추진자였다.
린을 살해한 것은 이 남자라고, 렌은 확신하고 있었다.
# by | 2009/11/07 15:16 | ★同人Work★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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